[한국태권도신문] 한 사람의 인생이 한 시대의 역사로 기록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대한민국 태권도의 세계화 과정에서 자신의 청춘과 열정을 바치고 군 태권도의 발전과 국제 보급에 평생을 헌신한 인물. 바로 태권도 원로 창무관 출신 양해룡 9단 고문이다.
90여 년의 삶 속에서 태권도는 그의 인생이었고 사명이었다. 그는 군인으로 조국을 지켰으며 태권도인으로 대한민국의 위상을 세계에 알렸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태권도 종주국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기까지 그 길 위에는 양해룡 고문과 같은 선구자들의 헌신이 있었다.
1936년 9월 24일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양해룡 고문은 어린 시절 선친의 고향인 전남 광주로 귀국했다. 광주수창초등학교를 거쳐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전남대학교 공과대학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대학 재학 시절에는 4·19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며 시대의 아픔과 정의에 대한 신념을 가슴에 품었다.
1960년 대학 졸업 후 국가를 위한 길을 선택한 그는 육군보병학교 갑종장교 과정에 입교했고 1961년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최전방에서 소대장 임무를 수행하며 군인의 길을 걸었고 1965년에는 맹호부대 소대장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베트남 생활은 단순한 전투 임무만이 아니었다. 그는 전투가 소강상태에 접어들면 태권도복으로 갈아입고 월남 전역을 누비며 태권도 시범을 펼쳤다. 300여 회에 이르는 태권도 시범 활동은 현지 주민들에게 대한민국의 문화와 정신을 알리는 역할을 했으며 한국군의 강인함과 태권도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귀국 후에도 그의 태권도 인생은 계속됐다. 육군보병학교 특수전학부 태권도 교관으로 활동하며 장교들에게 태권도를 지도했고 군 태권도의 체계적인 발전에 힘을 보탰다. 이후 베트남 달랏 육군사관학교에 파견되어 860여 명의 사관생도들에게 태권도를 지도하며 대한민국 태권도의 우수성을 알렸다. 당시 육군사관학교장에게 직접 태권도를 지도하고 단증을 부여하는 등 태권도를 통한 군사 교류와 우호 증진에도 기여했다.
1968년 베트남 현지에서 발생한 위기 상황에서도 태권도 교관단과 함께 임무를 수행하며 군인으로서의 책임과 용기를 보여주었다. 그의 삶에서 태권도 정신은 곧 국가를 위한 헌신과 연결되어 있었다.
양해룡 고문의 태권도 외교 활동은 국경을 넘어 이어졌다. 1974년 중동 경제사절단과 함께 태권도 시범단장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파견된 그는 태권도를 대한민국을 알리는 문화외교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현지에서 펼친 태권도 시범은 큰 호응을 얻었으며 태권도가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
또한 자유중국(대만) 육군보병학교 요청으로 파견되어 군 태권도 전문교관으로 활동하며 대만군 태권도 보급에 앞장섰다. 교육 성과를 인정받아 우수교관으로 선정되고 육군참모총장 표창을 받는 등 대한민국 태권도의 위상을 높였다.
군 태권도의 역사에서도 그의 이름은 빛난다. 육군본부 태권도 수석사범으로 활동하며 군 태권도 훈령 제95호 제정에 참여해 제도적 기반 마련에 기여했다. 또한 1980년 제1회 세계군인태권도대회에서는 대회본부장을 맡아 24개국이 참가한 국제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대한민국 군 태권도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한미연합사 창설요원으로 참여해 작전 분야에서도 임무를 수행한 그는 1982년 육군 대령으로 진급했고 미국 국무성 초청으로 펜타곤과 주요 군사시설을 방문하는 등 국제 군사교류에도 참여했다.
1988년 군문을 떠난 뒤에도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방위산업 분야에서 활동하며 국가 산업 발전에 기여했고 동시에 태권도 발전과 후진 양성을 위한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2002년 태권도 9단에 승단한 그는 현재 태권도 9단회 원로위원으로 활동하며 후배들에게 경험과 지혜를 전하고 있다. 또한 세계태봉술연맹 명예총재로서 무도의 가치와 정신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2023년에는 주월한국군사령부 태권도교관단 전우회가 태권도 세계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단체표창을 수상하는 데 함께하며, 오랜 세월 이어온 헌신을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
오늘날 태권도는 세계인의 무도가 되었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았다. 그 역사 속에는 이름 없이 헌신한 수많은 태권도인이 있었으며 양해룡 고문은 그 중심에서 대한민국 태권도의 길을 개척한 선구자였다.
젊은 시절 전장을 누비며 태권도를 알렸던 사범, 군 태권도의 기반을 다진 장교, 세계 곳곳에 태권도의 가치를 전한 지도자, 그리고 지금도 후배들에게 정신과 철학을 전하는 원로. 그의 삶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태권도 그 자체였다.
양해룡 고문은 말한다. “제 인생은 곧 태권도였습니다.” 그 한마디에는 조국을 향한 충성, 무도인으로서의 신념, 그리고 대한민국 태권도를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평생의 열정이 담겨 있다.
태권도는 사람을 남기고 역사는 그 사람을 기억한다.
양해룡 9단 고문의 삶은 대한민국 태권도의 역사 속에 오래도록 빛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