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태권도신문] 태권도계에는 화려한 말보다 행동으로 자신의 삶을 증명하는 지도자들이 있다. 오원걸 9단은 바로 그런 인물이다. 강인한 정신과 책임감, 적극적인 실천력, 그리고 가정에 대한 헌신을 바탕으로 평생 태권도의 길을 걸어온 정통 태권도 지도자다. 오원걸 사범(69세)의 인생은 도전의 역사였다. 젊은 시절 아마추어 복싱선수로 활동하다 프로무대에 진출하며 강인한 정신력을 길렀고 이후 태권도의 길을 선택해 오늘날 세계 각국에 태권도를 보급하는 국제 지도자로 성장했다. 1988년 서울 강남구에서 보라매태권도장을 운영하며 본격적인 지도자의 길에 들어선 그는 1989년 제9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아프리카 모리셔스 코치로 활동하며 국제무대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국내 지도자에 머물지 않고 세계를 무대로 태권도 보급에 헌신했다. 1996년에는 청와대 초청으로 김영삼 대통령 앞에서 택견 시연을 펼쳤으며 같은 해 미국과 캐나다 순회 시범을 통해 한국 전통무예의 우수성을 알렸다. 또한 한국민속촌 택견 시연단원으로 활동하며 우리 전통무예의 보존과 전승에도 힘을 보탰다. 1996년부터 2002년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와 샌디에이고, 리버사이드 지역을 비롯해 중국 베이징
[한국태권도신문] 태권도계에는 화려한 직함이나 수상 경력보다 더 큰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태권도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기(國技)이자 세계인이 수련하는 무도로 성장하기까지 평생 현장을 지켜온 원로들이다. 김정록 9단은 바로 그러한 태권도인의 전형으로 평가받는다. 최근 성문당에서 출간된 『태권도인 김정록 사범이 살아온 발자취』는 한 개인의 회고록을 넘어 대한민국 태권도 현대사를 담아낸 귀중한 기록물이다. 책 속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아니라 태권도가 걸어온 길과 그 과정에서 묵묵히 헌신한 지도자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37년 광주에서 태어난 김정록 9단은 1955년 광주기계공업고등학교 재학 시절 당수도 수련을 시작하며 무도인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태권도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당수도 시절부터 태권도의 명칭 제정, 국기원 설립, 세계화 과정에 이르기까지 태권도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현장에서 직접 지켜본 산증인이다. 그는 지도자이자 행정가로서도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 전남태권도협회 상임부회장, 광주광역시태권도협회장, 광주광역시생활체육태권도연합회장, 광주광역시체육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지역 태권도 발전에 헌신
[한국태권도신문] 태권도계에는 단순히 오랜 기간 수련을 이어온 사람을 넘어 태권도의 역사 자체를 몸소 경험하고 기록하며 미래를 제시하는 인물들이 있다. 김명수 9단은 그러한 태권도 원로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43년 충남 서산 해미에서 태어난 김명수 9단은 조선 초기에 건립된 해미읍성 인근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성장했다. 넓은 평야와 바다를 품은 고장에서 사람을 배려하며 살아야 한다는 조부모의 가르침 속에 자란 그는 어린 시절부터 정의와 공정, 국가와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삶의 가치로 삼아왔다. 그가 태권도를 처음 접한 것은 1958년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이후 고등학교와 한양대학교 체육학과를 거치며 본격적으로 태권도의 길에 들어섰다. 당시만 해도 태권도는 오늘날과 같은 학문적 체계를 갖추지 못한 시기였지만 그는 태권도를 단순한 무술이 아니라 인간을 수양하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문화로 바라보았다. 김명수 9단은 태권도의 본질을 “몸과 마음을 갈고닦아 스스로를 완성하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승패의 결과보다 목표를 향해 성실하게 노력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그의 인생관은 곧 태권도 정신과 맞닿아 있다. 대학 졸업 후 ROTC 장교
[한국태권도신문] 태권도계에는 화려한 수식어보다 긴 세월의 헌신으로 존경받는 인물들이 있다. 세계태권도창무관 김중영 총관장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창무관 총관장, 국기원 기술고문, 국기원 교본편찬위원회 위원장, 고단자심사위원장, 해외심사심의위원, 태권도9단회 회장 등 수많은 직책을 거쳤지만 그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은 ‘평생 태권도인’일 것이다. 그는 태권도의 태동기를 직접 경험한 세대로서 기술과 정신, 교육과 행정, 그리고 세계화 과정까지 함께해 온 살아있는 역사다. 전쟁의 상처를 딛고 시작한 태권도 인생 김중영 총관장은 1942년 충청남도 서천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았던 1953년 서울로 올라와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넉넉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도 학업을 포기하지 않았고 스스로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책을 팔며 공부를 이어갔다. 어려운 시절 그가 만난 태권도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었다. 삶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었고 자신을 단련하는 인생의 길이었다. 창무관 수련을 통해 태권도의 기본정신을 배우고 무도의 가치를 깨달은 그는 이후 평생을 태권도와 함께하는 삶을 선택했다. 지도자와 교육자, 행정가와 출판인으로 활동하면서도 늘 태권도를 삶의 중심
[한국태권도신문] 세계 스포츠 역사에는 선수보다 지도자로 더 위대한 이름을 남긴 인물들이 존재한다. 한국 태권도계에서 김세혁 전 국기원 연수원장은 바로 그런 존재다. 그는 단순한 감독이 아니었다. 한국 태권도 겨루기의 황금기를 설계한 전략가이자, 세계 무대에서 대한민국 태권도의 위상을 끌어올린 승부사였다. 또한 수많은 국가대표 선수들의 가능성을 꽃피우며 세계 정상으로 이끈 지도자였다. 수십 년 동안 현장에서 선수들을 길러내며 대한민국 태권도를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올려놓았고 이후에는 행정과 교육 분야에서도 태권도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열정과 경험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특히 겨루기 경기인 출신으로 국기원 명예 9단을 수여받은 것은 단순한 개인의 영예를 넘어선다. 그것은 한국 태권도 겨루기 역사가 한 지도자의 헌신과 업적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상징적 순간이었다. 동성고의 전설, 세계를 제패한 명장 1955년생인 김세혁 전 연수원장은 동성고등학교 체육교사 시절부터 이미 태권도계에서 전설적인 지도자로 불렸다. 당시 동성고 태권도부는 전국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김세혁 감독의 이름은 곧 ‘강한 팀’, ‘이기는 조직’, ‘철저한 준비’를 상징했다. 그는 선수의 가능성을
[한국태권도신문] 미국 서부 로스앤젤레스(LA)에 태권도의 씨앗이 막 뿌려지기 시작하던 1960년대 후반. 당시 미국 사회에서 태권도는 아직 낯선 이름이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한국 무술을 ‘코리안 가라데(Korean Karate)’ 정도로 인식했고, 태권도라는 고유 명칭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 혼란의 시대에 “태권도는 태권도여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미국 사회에 정식 명칭과 철학을 뿌리내린 인물이 있다. 바로 미국 LA 도산체육관의 김용길 총관장이다. 그는 오늘날 미국 태권도사의 산증인이자, 태권도의 세계화 초창기를 몸으로 개척한 원로 사범으로 평가받는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Anaheim)에서 개최된 2025 국기원 세계태권도한마당 행사에서 김 총관장은 미국 태권도 개척 공로를 인정받아 특별 공로로 개척자상을 받으며 반세기가 넘는 헌신과 활동이 주목을 받았다. 다만 이후 국기원 측은 공식 상훈 체계에 ‘태권도 미국 개척자상’ 명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당 상의 공식 승인에는 선을 그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재까지도 공식성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969년, 김용길 총관장은 유학길에 올라
[한국태권도신문] 서울 종로구 내수동에서 태어난 백진건 사범(1947년생)의 삶은 개인의 이력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이면, 그리고 태권도 세계화의 초창기를 함께 관통한 한 세대의 기록이다. 1970년대 초, 국가 경제 재건을 위해 수많은 청년들이 해외로 향하던 시기. 그는 ‘파독 광부’로 독일 땅을 밟았다.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그 안에서 그는 또 다른 사명을 발견하게 된다. 낯선 언어, 문화적 고립, 그리고 광산이라는 극한의 노동 환경. 그러나 그는 그 속에서도 자기 정체성을 놓지 않았다. 그 중심에는 태권도가 있었다. 광산의 어둠 속에서도 수련을 이어갔던 시간은 단순한 개인의 의지를 넘어 훗날 그의 삶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는 기반이 되었다. ■ 창무관의 뿌리, 삶의 기준으로 확장되다 백진건 사범은 1963년 서울 청량리 동아체육관에서 창무관 계열 태권도에 입문했다. 고(故) 김순배 관장에게 직접 사사받은 그는 창무관 특유의 엄격한 기본기와 정신 중심의 수련 철학을 체득했다. 이 철학은 단순한 무술 수련의 범주를 넘어 그의 삶 전반을 규정하는 기준으로 작용했다. 태권도는 그에게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만드는 도(道)’였으며, 어떤
[한국태권도신문]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에 위치한 ‘험프리스 타이거 태권도장’의 강다혜 관장은 한국과 미국을 잇는 태권도 교육을 목표로 도장을 운영하고 있다. 2026년 3월 2일 개관한 이 도장은 유치부 4세부터 성인까지 폭넓은 연령층을 대상으로 태권도의 가치를 전하고 있다. Q. 도장 소개와 개관 배경을 말씀해 주세요. 험프리스 타이거 태권도장은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에 위치하고 있으며, 2026년 3월 2일 개관하였습니다. 유치부 4세부터 50세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수련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태권도를 통해 신체적 성장뿐 아니라 인성과 정신력을 함께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Q. 도장을 운영하시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향은 무엇인가요? 수련생들에게 정확한 태권도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한미 태권도 발전에 기여하고, 올바른 태권도 문화를 전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Q. 지도 철학과 교육 방향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저희 도장은 미국 학생들의 비중이 높은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전통 무예로서의 태권도를 올바르게 알리고, 문화 교류의 역할까지 함께 수행하고자 합니다. 단순한 운동을
[한국태권도신문] 한국 태권도의 세계화 역사에서 김삼장(1941년생, 9단) 대사범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접경지역 파주에서의 헌신적인 지도자 활동을 시작으로 태권도가 생소하던 시절 미국 뉴욕주에 정착해 제도화의 기틀을 마련하기까지 그의 발자취는 한국 태권도 현대사의 한 축을 이룬다. 오도관에서 시작된 지도자의 길 김삼장 대사범은 1965년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남빌딩에 태권도 오도관 통일체육관을 개관하며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태권도 발전이라는 더 큰 목표를 위해 도장을 제자에게 양도하고 경기도 파주로 거처를 옮겼다. 1967년부터 1976년까지 그는 군, 관, 민의 협조 속에서 파주지역 여러 학교를 중심으로 태권도 교육에 전념했다. 안보의 최전선이던 접경지역에서 태권도를 통한 인성교육과 체력 단련은 지역사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72년 5월 6일에는 대한태권도협회(회장 김운용) 최초 지도자 교육 제1기를 수료했다. 이는 국기원과 세계태권도연맹 설립 이전의 과정으로 한국 태권도 지도자 양성사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파주에서 쌓은 신뢰와 공공의 역할 파주시 탄현면 출신인 우종림 장군(육군 제1사단장, 제2대 세계태권도오도관 중앙본관장
[한국태권도신문] 태권도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는 오랫동안 태권도계의 숙원 과제였다. 그러나 방대한 학술적 검증, 복잡한 행정 절차, 장기적인 재정 부담이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그 과제는 늘 구호에 머물렀다. 이러한 쉽지 않은 길의 출발점에 선 인물이 있다. KOREA 태권도유네스코추진단 최재춘 단장이다. KOREA 태권도유네스코추진단은 2025년 12월, 국가유산청을 통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 공모 신청서 제출을 공식 완료했다. 이는 태권도를 단순한 경기 종목이 아닌 인류가 함께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으로 국가 차원에서 공식 검토 단계에 올려놓은 중대한 진전이다. 이 성과의 중심에는 지난 6년간 흔들림 없이 추진단을 이끌어 온 최재춘 단장의 집념과 책임이 있다. 최 단장은 2019년, “누군가는 시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KOREA 태권도유네스코추진단을 출범시켰다. 당시 태권도의 유네스코 등재는 필요성만 거론될 뿐, 실질적 추진 주체와 체계는 부재한 상황이었다. 그는 명분보다 실행을 택했고, 단기간의 성과가 아닌 장기적 완성을 목표로 길을 열었다. 추진단은 지난 6년간 태권도의 역사와 철학, 전승 체계를 유네스코 기준에 맞게 체
[한국태권도신문] 양진방(68) 대한태권도협회장이 8년 만에 부활한 세계태권도연맹(WT) 선출직 부총재로 이름을 올렸다. WT는 지난 23일 중국 장쑤성 우시 월드호텔 그랜드 주나에서 열린 총회 및 임원 선거에서 양 회장을 비롯한 3명의 부총재를 새로 선출했다. 같은 날 단독 출마에 나선 조정원 총재가 6번째이자 마지막 연임에 성공하면서 WT의 새로운 4년 임기를 책임질 지도부 구성이 마무리됐다. 지난 2017년 이후 당연직으로 전환됐던 WT 부총재직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굿거버넌스 권고에 따라 이번 총회부터 선출직으로 돌아왔다. WT는 지난해 춘천 총회에서 정관을 개정해 부총재 직접 선출 방식을 재도입했다. 이번 선거에선 총 3석의 부총재를 두고 6명의 대륙별 후보가 경쟁을 벌였다. WT 집행위원과 회원국협회(MNA)의 투표 결과, 아시아 지역에서 출마한 양 회장은 98표를 얻어 1위에 올랐다. 아타나시오스 프라갈로스 유럽태권도연맹 회장(96표)과 드리스 엘 힐라리 모로코태권도협회장 겸 WT 집행위원(81표)이 뒤를 이었다. 양 회장은 총회 뒤 “WT 정관이 변경된 후 집행위원회와 부총재를 선출하는 방식, 쿼터 등도 달라졌기 때문에 과거와는 비교할
[한국태권도신문] "마지막 4년도 태권도의 변화를 위해 뛰겠습니다."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WT) 총재(78)가 6번째 연임에 성공한 자신의 화두로 변화를 제시했다. 2004년부터 무려 21년간 태권도 하나만 바라보며 살아왔던 그는 23일 중국 장쑤성 우시의 월드호텔 그랜드 주나에서 WT 총회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4년 더 태권도 수장을 맡게 됐다. 조 총재는 현장과 온라인을 결합한 이번 선거에 단독 입후보해 총 149표 중 143표(반대 5표·기권 1표)를 받아 연임에 성공했다. 조 총재가 지난해 춘천 WT 총회에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선을 그으면서 레임덕이 우려됐던 것과는 사뭇 다른 결과물이다. 조 총재는 선거가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나 "스포츠 태권도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확실한 입지를 다져달라는 의미로 이번 선거에서 투표로 지지해준 것 같다"면서 "마지막 4년도 봉사하는 마음으로 뛰겠다"고 활짝 웃었다. 1973년 창설된 WT는 고 김운용 초대 총재(1973~2004년)에 이어 조 총재가 수장을 계속 맡고 있다. 조 총재는 "앞으로 4년이면 25년째가 된다. 원래 총재는 임기 제한이 없었지만 나 스스로 2021년 WT 총회에서 총재와 부총재,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