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태권도신문] 한국 태권도의 세계화 역사에서 김삼장(1941년생, 9단) 대사범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접경지역 파주에서의 헌신적인 지도자 활동을 시작으로 태권도가 생소하던 시절 미국 뉴욕주에 정착해 제도화의 기틀을 마련하기까지 그의 발자취는 한국 태권도 현대사의 한 축을 이룬다.
오도관에서 시작된 지도자의 길
김삼장 대사범은 1965년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남빌딩에 태권도 오도관 통일체육관을 개관하며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태권도 발전이라는 더 큰 목표를 위해 도장을 제자에게 양도하고 경기도 파주로 거처를 옮겼다.
1967년부터 1976년까지 그는 군, 관, 민의 협조 속에서 파주지역 여러 학교를 중심으로 태권도 교육에 전념했다. 안보의 최전선이던 접경지역에서 태권도를 통한 인성교육과 체력 단련은 지역사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72년 5월 6일에는 대한태권도협회(회장 김운용) 최초 지도자 교육 제1기를 수료했다. 이는 국기원과 세계태권도연맹 설립 이전의 과정으로 한국 태권도 지도자 양성사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파주에서 쌓은 신뢰와 공공의 역할
파주시 탄현면 출신인 우종림 장군(육군 제1사단장, 제2대 세계태권도오도관 중앙본관장 등)과의 인연 속에서 김삼장 사범은 지역사회와 군을 잇는 태권도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1970년 11월에는 한, 미 군 관계자들과 함께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하였고 1973년에는 파주경찰서 태권도 사범으로 위촉되는 등 태권도를 통한 민, 관, 군 교류에도 기여했다. 이러한 공로를 기려 1972년 파주 봉일천초등학교에는 그의 태권도 교육을 기념하는 동상이 세워졌다.
제자들이 증명한 지도력
김삼장 대사범의 지도력은 제자들을 통해 더욱 빛난다. 제자 중에는 대한민국 3선 국회의원 박정(더불어민주당, 파주을)도 있다. 박 의원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파주시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아들인 김성철 사범 역시 2019년 8단에 합격한 뒤 김삼장 대사범과 함께 미국 고단자회 정기 컨벤션에 참석하며 정통 태권도의 계보를 잇고 있다.

태권도 불모지 미국에서의 도전
1977년 7월 1일, 김삼장 사범은 태권도라는 이름조차 낯설던 시절 미국 뉴욕주 수도 알바니 인근 스케넥터디에 태권도 도장을 개관했다. 이는 태권도를 미국 사회에 뿌리내리게 하겠다는 도전의 시작이었다.
1985년에는 알바니 엠파이어 스테이트 플라자에서 열린 세계 축제의 날 행사에서 대규모 태권도 시범을 선보이며 현지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뉴욕주 태권도의 제도화
김삼장 대사범은 1985년부터 1998년까지 13년간 뉴욕주 태권도협회 창설 회장을 맡아 태권도를 제도와 문화로 정착시키는 일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86년 3월 8일 미국 최초로 ‘태권도의 날’이 뉴욕 주의회에서 법률로 제정, 선포되었고 같은 해 뉴욕주 지사컵 태권도대회가 창설됐다. 1987년에는 ‘평생 발차기의 날’이 법률로 제정되며 태권도는 뉴욕주 공공영역의 공식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는 제2회 월드컵 미국 대표팀 감독을 맡았으며 미국 올림픽 페스티벌 태권도 감독으로도 여러 차례 활동하며 국제무대에서 미국 태권도의 위상을 높였다.

원로 지도자로서의 현재
2003년에는 미국 고단자회 창설 멤버이자 초대 수석부회장으로 추대되었으며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세 차례 수상했다. 2019년 국기원을 방문해 원장과 환담을 가졌고 2024년에는 제자 박정 국회의원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데 이어 국기원 뉴욕지부장으로 임명됐다.
김삼장 대사범은 화려한 언변보다 하얀 도복의 실천으로 태권도를 전해온 지도자다. 그의 발자취는 태권도가 왜 세계인의 무도로 자리 잡았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역사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