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태권도신문] 서울 종로구 내수동에서 태어난 백진건 사범(1947년생)의 삶은 개인의 이력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이면, 그리고 태권도 세계화의 초창기를 함께 관통한 한 세대의 기록이다. 1970년대 초, 국가 경제 재건을 위해 수많은 청년들이 해외로 향하던 시기. 그는 ‘파독 광부’로 독일 땅을 밟았다.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그 안에서 그는 또 다른 사명을 발견하게 된다. 낯선 언어, 문화적 고립, 그리고 광산이라는 극한의 노동 환경. 그러나 그는 그 속에서도 자기 정체성을 놓지 않았다. 그 중심에는 태권도가 있었다. 광산의 어둠 속에서도 수련을 이어갔던 시간은 단순한 개인의 의지를 넘어 훗날 그의 삶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는 기반이 되었다. ■ 창무관의 뿌리, 삶의 기준으로 확장되다 백진건 사범은 1963년 서울 청량리 동아체육관에서 창무관 계열 태권도에 입문했다. 고(故) 김순배 관장에게 직접 사사받은 그는 창무관 특유의 엄격한 기본기와 정신 중심의 수련 철학을 체득했다. 이 철학은 단순한 무술 수련의 범주를 넘어 그의 삶 전반을 규정하는 기준으로 작용했다. 태권도는 그에게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만드는 도(道)’였으며, 어떤
[한국태권도신문] 26년 전통의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용인대태권도체육관이 ‘수기치인(修己治人)’ 철학을 바탕으로 한 교육형 도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경우찬 관장과 경성철 사범이 부자(父子) 지도자로 함께 무대에 서며 말이 아닌 행동으로 태권도 교육의 본질을 실천했다. 자기 수련과 인성 교육을 결합한 ‘보여주는 교육’은 오늘날 태권도장 운영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위치한 용인대태권도체육관은 26년간 한자리를 지켜오며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해 온 대표적인 태권도장이다. 오랜 시간 축적된 운영 경험 속에서도 초심을 잃지 않고 변화와 발전을 이어온 이곳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교육형 도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도장은 경우찬 관장(태권도 8단)과 경성철 사범(태권도 5단)이 부자(父子) 지도자로 함께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풍부한 현장 경험과 지도력을 갖춘 관장의 노하우에 학문적 기반과 젊은 감각을 겸비한 사범의 역량이 더해지며 세대 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기술 전수를 넘어 인성과 성장을 함께 이끄는 교육 환경을 형성하고 있다. 경우찬 관장의 지도 철학은 분명하다. 지도자는 말
[한국태권도신문]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에 위치한 ‘험프리스 타이거 태권도장’의 강다혜 관장은 한국과 미국을 잇는 태권도 교육을 목표로 도장을 운영하고 있다. 2026년 3월 2일 개관한 이 도장은 유치부 4세부터 성인까지 폭넓은 연령층을 대상으로 태권도의 가치를 전하고 있다. Q. 도장 소개와 개관 배경을 말씀해 주세요. 험프리스 타이거 태권도장은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에 위치하고 있으며, 2026년 3월 2일 개관하였습니다. 유치부 4세부터 50세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수련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태권도를 통해 신체적 성장뿐 아니라 인성과 정신력을 함께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Q. 도장을 운영하시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향은 무엇인가요? 수련생들에게 정확한 태권도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한미 태권도 발전에 기여하고, 올바른 태권도 문화를 전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Q. 지도 철학과 교육 방향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저희 도장은 미국 학생들의 비중이 높은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전통 무예로서의 태권도를 올바르게 알리고, 문화 교류의 역할까지 함께 수행하고자 합니다. 단순한 운동을
[한국태권도신문] 한국 태권도의 세계화 역사에서 김삼장(1941년생, 9단) 대사범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접경지역 파주에서의 헌신적인 지도자 활동을 시작으로 태권도가 생소하던 시절 미국 뉴욕주에 정착해 제도화의 기틀을 마련하기까지 그의 발자취는 한국 태권도 현대사의 한 축을 이룬다. 오도관에서 시작된 지도자의 길 김삼장 대사범은 1965년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남빌딩에 태권도 오도관 통일체육관을 개관하며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태권도 발전이라는 더 큰 목표를 위해 도장을 제자에게 양도하고 경기도 파주로 거처를 옮겼다. 1967년부터 1976년까지 그는 군, 관, 민의 협조 속에서 파주지역 여러 학교를 중심으로 태권도 교육에 전념했다. 안보의 최전선이던 접경지역에서 태권도를 통한 인성교육과 체력 단련은 지역사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72년 5월 6일에는 대한태권도협회(회장 김운용) 최초 지도자 교육 제1기를 수료했다. 이는 국기원과 세계태권도연맹 설립 이전의 과정으로 한국 태권도 지도자 양성사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파주에서 쌓은 신뢰와 공공의 역할 파주시 탄현면 출신인 우종림 장군(육군 제1사단장, 제2대 세계태권도오도관 중앙본관장
[한국태권도신문] 태권도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는 오랫동안 태권도계의 숙원 과제였다. 그러나 방대한 학술적 검증, 복잡한 행정 절차, 장기적인 재정 부담이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그 과제는 늘 구호에 머물렀다. 이러한 쉽지 않은 길의 출발점에 선 인물이 있다. KOREA 태권도유네스코추진단 최재춘 단장이다. KOREA 태권도유네스코추진단은 2025년 12월, 국가유산청을 통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 공모 신청서 제출을 공식 완료했다. 이는 태권도를 단순한 경기 종목이 아닌 인류가 함께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으로 국가 차원에서 공식 검토 단계에 올려놓은 중대한 진전이다. 이 성과의 중심에는 지난 6년간 흔들림 없이 추진단을 이끌어 온 최재춘 단장의 집념과 책임이 있다. 최 단장은 2019년, “누군가는 시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KOREA 태권도유네스코추진단을 출범시켰다. 당시 태권도의 유네스코 등재는 필요성만 거론될 뿐, 실질적 추진 주체와 체계는 부재한 상황이었다. 그는 명분보다 실행을 택했고, 단기간의 성과가 아닌 장기적 완성을 목표로 길을 열었다. 추진단은 지난 6년간 태권도의 역사와 철학, 전승 체계를 유네스코 기준에 맞게 체
[한국태권도신문] 양진방(68) 대한태권도협회장이 8년 만에 부활한 세계태권도연맹(WT) 선출직 부총재로 이름을 올렸다. WT는 지난 23일 중국 장쑤성 우시 월드호텔 그랜드 주나에서 열린 총회 및 임원 선거에서 양 회장을 비롯한 3명의 부총재를 새로 선출했다. 같은 날 단독 출마에 나선 조정원 총재가 6번째이자 마지막 연임에 성공하면서 WT의 새로운 4년 임기를 책임질 지도부 구성이 마무리됐다. 지난 2017년 이후 당연직으로 전환됐던 WT 부총재직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굿거버넌스 권고에 따라 이번 총회부터 선출직으로 돌아왔다. WT는 지난해 춘천 총회에서 정관을 개정해 부총재 직접 선출 방식을 재도입했다. 이번 선거에선 총 3석의 부총재를 두고 6명의 대륙별 후보가 경쟁을 벌였다. WT 집행위원과 회원국협회(MNA)의 투표 결과, 아시아 지역에서 출마한 양 회장은 98표를 얻어 1위에 올랐다. 아타나시오스 프라갈로스 유럽태권도연맹 회장(96표)과 드리스 엘 힐라리 모로코태권도협회장 겸 WT 집행위원(81표)이 뒤를 이었다. 양 회장은 총회 뒤 “WT 정관이 변경된 후 집행위원회와 부총재를 선출하는 방식, 쿼터 등도 달라졌기 때문에 과거와는 비교할
[한국태권도신문] "마지막 4년도 태권도의 변화를 위해 뛰겠습니다."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WT) 총재(78)가 6번째 연임에 성공한 자신의 화두로 변화를 제시했다. 2004년부터 무려 21년간 태권도 하나만 바라보며 살아왔던 그는 23일 중국 장쑤성 우시의 월드호텔 그랜드 주나에서 WT 총회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4년 더 태권도 수장을 맡게 됐다. 조 총재는 현장과 온라인을 결합한 이번 선거에 단독 입후보해 총 149표 중 143표(반대 5표·기권 1표)를 받아 연임에 성공했다. 조 총재가 지난해 춘천 WT 총회에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선을 그으면서 레임덕이 우려됐던 것과는 사뭇 다른 결과물이다. 조 총재는 선거가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나 "스포츠 태권도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확실한 입지를 다져달라는 의미로 이번 선거에서 투표로 지지해준 것 같다"면서 "마지막 4년도 봉사하는 마음으로 뛰겠다"고 활짝 웃었다. 1973년 창설된 WT는 고 김운용 초대 총재(1973~2004년)에 이어 조 총재가 수장을 계속 맡고 있다. 조 총재는 "앞으로 4년이면 25년째가 된다. 원래 총재는 임기 제한이 없었지만 나 스스로 2021년 WT 총회에서 총재와 부총재, 집
[한국태권도신문] 세계태권도 창무관을 전통과 정신이 살아있는 도장으로 끊임없는 열과 성을 다하여 이끌어 오면서 자기 절제와 책임을 중요시하며 창무관 운영 철학의 중심에 두고 있는 김중영 총관장을 영등포 사무실에서 아주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만났다. 김중영 총관장은 1942년 충남 서천 출신으로 1953년 6.25 동란이 끝난 후 12살 나이에 일찌감치 서울로 상경하였으며 중단된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중학교 나이부터 책 장사를 하면서 학비를 마련하고 태권도는 물론 책과의 인연으로 고등학교 진학 후 어린 나이에 오성출판사의 사장이 되면서 자수성가한 태권도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창무관의 철학과 기술을 계승하는 지도자 김중영 총관장은 세계태권도 창무관 제4대 총관장으로서 창무관의 철학과 기술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앞장섰다. 창무관은 태권도 5대 관 중 하나로,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철학을 가진 도장이다. 그는 "태권도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바로 세우는 길"이라고 강조하며, 창무관을 정신과 기술이 살아 숨 쉬는 도장으로 이끌어왔다. 국기원 교본 편찬과 오성출판사의 기여 김중영 총관장은 오성출판사 대표로서 국기원 교본 편찬 작업에 중추적인 역
[한국태권도신문] 인천 검단신도시 신중앙역 앞, 아이들의 환한 웃음소리가 새롭게 울려 퍼질 공간이 문을 열었다. 지난 7월 21일(월), 엠파이어빌딩 8층에 개관하는 **‘아빠가 가르치는 태권도’**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최근 학부모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며 지역 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름부터 남다른 이 태권도장은, 그 철학 역시 특별하다. 단순한 기술 교육을 넘어, 마치 자신의 자녀를 대하듯 정성과 책임을 담아 지도를 이어가는 곳이다. 이 도장을 이끄는 김성식 관장은 광주체육고를 졸업하고 조선대학교에서 태권도 전공으로 학사부터 박사까지 마친 태권도 교육 전문가다. 김 관장은 선수 생활과 교육 현장에서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인성과 자존감, 건강한 신체 성장을 함께 키우는 데 주안점을 둔다. 그는 “태권도는 단지 발차기나 품새를 배우는 운동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과 삶을 함께 성장시키는 교육”이라며, “한 명 한 명을 소중히 바라보며, 따뜻한 아버지의 마음으로 지도하겠다”고 강조했다. 도장 내부 역시 주목할 만하다. 5~7세 유아 전용 수련관, 초등·중등 전문관을 분리 운영해 연령별 교육의 질을 높였고, 여기에 **줄넘기 특화 프로그램 ‘점
[한국태권도신문] 김운용스포츠위원회 위원장 겸 KOREA 태권도 유네스코 추진단에서 강한 열정을 보여주고 있는 최재춘 단장을 만났다. 최재춘 단장은 태권도 외길 인생 60여 년을 걸어오며, 국내외 수많은 태권도인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태권도를 단순한 무도가 아닌, 대한민국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고, 나아가 전 인류가 함께 향유할 세계 무형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KOREA 태권도 유네스코 추진단은 국내 유관 기관과 협력하여 태권도의 문화사적 가치, 전통성, 공동체성 등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정리하고 있는 민간 단체이다. 태권도가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문화와 철학, 공동체적 가치를 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국제사회에 이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다양한 컨퍼런스, 역사 사진전, 등재 기원대회, 챌린지 행사 개최하고 있다고 최재춘 단장은 강조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항은 각국 유네스코 관계자들과의 긴밀한 네트워킹과 외교적 협력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이러한 국제적 공감대가 등재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재춘 단장은 2012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의 유산 발굴 과정에서 국기 태권도가 법률로 지정되어
[한국태권도신문] 어린 시절 도복을 입고 처음 도장 바닥을 밟은 그날부터 손민호 대표의 삶은 언제나 태권도와 함께였다. 선수로 전국을 누비며 수많은 시합에 출전했고, 끊임없는 훈련과 도전 속에서 정신력과 기술을 갈고닦았다. 그는 선수 생활을 마친 뒤 자연스럽게 코치로 전환했고 후배들을 지도하며 기술 이상의 가치를 느끼게 되었다. “태권도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교육이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손 대표를 기술 지도자에서 진정한 교육자로 변화시켰다. “화려한 경기장에서의 박수보다 도장에서 아이들과 호흡하며, 그들의 삶을 바꾸는 일이 훨씬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경기에서 이기는 법이 아니라, 인생을 이기는 법을 가르치고 싶었어요.” 손 대표는 선수로서의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적 커리큘럼을 재구성했다. 인성교육, 가정교육, 리더십 등을 접목한 프로그램을 직접 설계하며 예건YTS 태권도장을 설립했다. 이곳은 단순한 체육시설이 아닌, 체계적인 상담 시스템과 성장 추적, 학부모와의 소통까지 갖춘 진정한 태권도 교육기관이다. “예건YTS는 ‘누구나 보내고 싶지만 아무나 다닐 수 없는 도장’이라는 철학을 지키며, 아이 한 명 한 명을 끝까지 책임지는 교육을 실천하고 있습
[한국태권도신문] 젊은 시절 사회활동이 왕성할 즈음에 태권도의 소중한 인연으로 만나 약 50년이 가까운 지금까지 번함 없고 허물없는 절친한 관계로 노령의 나이에도 인생을 즐기고 있는 김중영(9단) 회장과 전창식(9단) 고문을 만났다. 두 사람의 공통점을 보면 평소에는 만만하게 보일 만큼 여리고 약하며 부드럽고 순하게 보이나 내면에는 잠재된 강인함을 가진 소유자로서 겸손함은 물론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동시에 갖추고 있고 소신과 지혜로운 면을 가져 많은 태권도인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이상적인 인간상을 지니고 있다. 김중영 회장은 1942년 충남 서천 출신으로 1953년 6.25 동란이 끝난 후 12살 나이에 서울로 상경하여 서울 청량리 창무관에서 태권도를 시작하였으며 전창식 고문은 1942년 서울 종로 출신으로 해방 이후 어머니의 고향인 경기도 김포군으로 이사를 하고 1957년 서울 영등포 무덕관에서 태권도를 시작했다. 김중영 회장은 태권도를 배우며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중학교 나이부터 책 장사를 하면서 수련비와 학비를 마련하고 책과의 인연으로 고등학교 진학 후 어린 나이에 형의 명의를 빌려 오성출판사의 사장이 되었으며 지금까지 사업은 이어오고 있다. 또한